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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이 되는 순간 그것은 더 이상 대안이 아니다

인천문화재단 기획사업팀 - 박소현



박소현씨는 1998년 처음으로 정부의 인가를 받은 대안학교, ‘간디학교’의 첫 번째 졸업생이다. 
한 때 그림에 흥미를 느껴 예고 입시를 준비하기도 했던 그녀는 고등학생 시절 문화와 관련된 일을 꿈꿨다. 
그 꿈은 현실이 되어 지금은 지역 문화발전을 위해 인천광역시에서 만든 공공기관인 인천문화재단 기획사업팀에서 일하고 있다.

그녀가 하는 일은 참여형 문화 사업을 기획하는 일로, 예술가와 시민들의 만남을 위한이 문화로 만나는 사업을 기획하는 것이다. 
그녀는 문화예술 분야에서 일을 시작한 지 올해로 6년차에 접어들었다. 
누구보다 성실하고, 거침없이 달려온 그녀의 지난 시간의 이야기는 흥미로웠다.

처음에는 부모님의 권유에 어쩔 수 없이 대안학교에 갔어요

중학생이었던 소현씨는 예고 입시 준비를 위해 미술학원에 다녔다.
공장에서 찍어내듯 비슷한 그림을 그려야하는 학원생활에 점점 지쳐가던 그녀는 결국 예고 진학을 포기했다. 
이후 일반고 진학에 대해서도 생각해봤지만 그 역시 그녀가 원하는 길은 아니었다.

“제가 미술을 그만둬야겠다고 생각한 건 잘하는 일과 좋아하는 일은 다르다고 말씀하시는 어머니 영향이 컸어요. 
좋아하는 일을 직접 하지는 못해도 관련된 일을 할 수 있는 방법은 다양하게 있을 거라고 마음 속 깊이 생각했었기 때문에 그 때부터 내가 잘하는 일이 무엇인지에 대해 계속 고민을 했었죠. 
고등학생 때부터 문화랑 관련된 일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그녀는 검정고시를 통해 고등학교 졸업장을 받기로 마음먹었지만 그 뜻을 받아들이지 못한 부모님은 그녀에게 대안학교를 제안했다. 
대안학교가 어떤 학교인지 잘 알려지지 않았던 시기였기에 그녀는 대안학교 1세대였다.

“저는 대안학교에 대해 전혀 아는 바가 없었어요. 
처음에는 부모님의 강한 권유에 어쩔 수 없이 다니게 되었던 거죠. 
교육운동 활동을 하시던 어머니가 주위에서 대안학교에 대한 소개를 받은 적이 있어서 많은 정보를 알고 계셨어요.”

부모님과 떨어져 사춘기를 보내면서 오히려 다툴 일이 없어졌어요

소현씨는 경상남도 산청군에 위치한 ‘간디학교’에 들어갔다. 
그녀가 여러 대안학교 중에서 간디학교를 선택한 것은 인문계고등학교로 인가 받은 학교이기 때문이었다. 
인가학교임에도 불구하고 일반고와는 다른 간디학교의 교육과정은 그녀의 마음을 끌었다.

“간디학교를 들어가려면 캠프 같은 일정을 수행을 해야 하거든요. 
그 과정에서 배웠던 건 국영수 같은 교과목이 아니라 빵 만들기라든지 의식주 관련 교과목이었어요. 
살면서 필요한 것들을 가르쳐준다는 점이 호기심을 자극했었던 것 같아요. 
그런 점이 마음에 들었어요.”

중학생이 되고, 사춘기가 시작된 이후 좀처럼 부모님과의 거리감을 좁히지 못 한 채 간디학교에 들어왔던 그녀는 기숙사 생활을 하며 부모님과의 갈등을 조금씩 풀어갔다.

“기숙사 생활을 하다보면 부모님은 적이 될 수 없어요. 
멀리 떨어져 생활을 하는 부모님보다는 같이 있는 친구라든지 선생님들과의 관계, 이런 것들이 가장 힘들고 큰 숙제가 되죠. 
사춘기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 막연하다보니 두려워져서 가장 가깝고, 편한 사람에게 상처를 주게 되는 시기인데, 당사자도 부모님도 힘들 때잖아요. 
그런 시기에 부모님과 떨어져 지내보니 오히려 부모님이 제게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깨닫게 되더라고요.”

서툰 손길이었지만 우리의 손으로 직접 만들어나갔어요

간디학교에서 보낸 3년이라는 시간은 그녀에게 있어 많은 것을 배우고, 시험해보고, 도전해볼 수 시간이었다. 
그녀가 입학했을 당시 간디학교의 건물과 시설은 완벽하게 준비된 상태가 아니었다. 
학생, 학부모, 선생님 할 것 없이 팔을 걷고 나서, 학교를 만들고 운영하는데 모두 힘을 보탰다.

“10월 10일이 학교개교기념일이에요. 
간디학교 탄생일이라고 ‘간탄일’이라고도 부르는데 그날 어떤 세부적인 프로그램이 들어갈지, 각자 어떤 역할을 맡을지를 학생들끼리 결정을 했어요. 
서로 의견을 내고, 다른 의견이 있을 때 조율을 하는 그런 과정을 통해 많은 걸 배웠죠.”

한 학년의 정원이 20명이었던 간디학교의 1회 졸업생은 소현씨를 포함해 16명뿐이었다. 
모든 걸 혼자 결정하고, 마련해야 하는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해 일반고로 돌아간 친구들도 있었지만 서툰 손길로 하나씩 일구어 나가고, 결정해가는 힘든 과정에서 그녀는 많은 걸 경험하고,
배웠다고 말했다.

“생활과 삶의 리듬을 스스로 만들고, 조절하는 방법을 배웠어요. 
싫어하는 것, 힘든 것을 어떻게 이겨내는지에 대한 것도 실험을 해봤기 때문에 어려움이 닥쳤을 때 잘 극복해 나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게 돼요.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서 힘들고 지칠 때 자신을 믿고 신뢰하는 것. 
그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고, 힘이 되는 것 같아요.”

대학생활은 즐거웠지만 그만큼 고민도 많았죠

고등학교 3학년 때 잠시 호주로 어학연수를 다녀오기도 했던 그녀는 졸업 후 호텔 매니지먼트를 공부하기 위한 유학길에 오를 계획이었지만 당시 IMF 경제위기로 국내 사정이 좋지 않았던 탓에 유학을 미뤄야만 했다. 
지금의 대안학교들의 경우와 인턴쉽 같은 프로그램이 탄탄하게 마련되어 있지만, 그렇지 않았던 당시의 대안학교 졸업생들은 대부분 대학에 가거나, 취업을 했다. 
간디학교를 졸업할 때까지도 앞으로 어떤 일을 하며 살아야 할 지 결론을 내리지 못 했던 그녀는 대학에 다니며 고민을 계속해나갈 생각이었다. 
그렇게 그녀는 경상광고학부에 입학하여 광고홍보과를 선택했다.

“광고홍보학과에 지원했던 건 눈속임으로 사람들에게 제품을 사게 만드는 그런 광고가 아닌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광고를 만들고 싶은 마음에서였어요. 
그런데 공부를 하다보니 마케팅, 경영 쪽에 흥미를 느끼게 되어서 경영학과를 선택을 하게 됐어요.”

대학을 다니며 공부의 재미를 알게 된 그녀는 학과 수석(1등)을 할 정도로 열심이었다. 
공부뿐만 아니라 학회 활동과 기숙사 사생회 활동 그리고 미술관에서 도슨트 자원봉사를 하기도 했다.

“제가 다녔던 학교가 너무나 외진 곳에 있었고, 그래서 인간관계의 폭이 좁다고 생각했어요.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새로운 경험을 하다보면 제가 미처 깨닫지 못했던 진짜 하고 싶은 일을 발견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이 컸던 것 같아요. 
미술관에서 전시를 설명하는 도슨트는 새로운 시작의 첫 발걸음이었죠.”

경영학과에 다니며 마케터로 살아가는 선배들의 일하는 모습을 본 그녀는 ‘광고주의 요구에 맞춰야만 하는 생활을 할 수 있을까?’하는 고민에 빠졌다. 
그 때 미술관 자원봉사를 하며 알게 된 문화예술경영 분야의 사람들을 떠올랐다. 
경영학과를 졸업한 그녀는 경영에 대한 자신의 생각과 문화가 만났을 때 어떻게 변할 수 있는지 호기심이 생겼다. 
오랜 고민 끝에 그녀는 대학원 진학을 결심했다.

제가 한 선택에 스스로 책임을 지고 싶었어요

소현씨가 대학원에 가고자 했던 그 때는 문화예술경영이라는 분야가 이제 막 알려지기 시작하던 때였다. 
대학원 진학을 반대하는 부모님께 문화예술경영을 전공하고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게 될 것인지 설명하기 어려웠지만, 문화예술경영에 대해 공부하고 싶다는 그녀의 의지만은 확고했다. 
결국 부모님은 그녀의 결정을 존중하며 대학원 진학을 허락했다.

“미술관, 박물관 경영을 전공했지만 안정적으로 큐레이터나 학예사가 되기에는 어려움이 있었어요. 
학부 때부터 관련 연구를 해야 하기도 했고, 자격을 취득하고 사회적으로 인정받기위해 아주 오랜 시간의 자기 투자가 필요한데 저는 그럴 수 없었거든요.”

소현씨는 부모님께 대학원학비와 생활비의 일부를 도움을 받기는 했으나, 대학원 조교로 일하며 돈을 벌며 대학원에 다녔다. 
하루 빨리 부모님으로부터 경제적인 독립을 하고자 하는 마음이 컸기 때문이었다.
그런 그녀로서는 적은 임금의 미술관 인턴십을 한다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운 좋게도 그녀는 대학원을 졸업할 때 즈음 각 광역문화재단의 공채를 뽑는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친한 선배로부터 채용 정보를 듣게 된 그녀는 바로 지원서를 제출했다. 
서류전형을 통과한 그녀에게 남은 건 논술시험과 면접이었다.

“지금이야 대답이 어렵지 않은 문제들이지만, 문화예술 정책이 아닌 박물관, 미술관경영을 전공한 저로서는 논술시험에 대한 부담이 적지 않았어요. 
그래도 대학원에 다닐 때 문화예술경영연구소의 교수님 밑에서 연구보조를 하면서 어깨 너머로 배웠던 것들이 많이 도움이 되었어요.”

처음 하는 일이었기에 우선 괜찮은 사람으로 인정받고 싶었어요

인천문화재단에서 일을 시작한 소현씨는 처음 하는 일에서 능력을 인정받기 바라기 보다는 우선 괜찮은 사람으로 인정받고 싶었다. 
자신이 어떤 일을 맡아야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지, 자신에 대한 확신이 없었던 그녀는 자신이 직장에서 필요한 사람이라는 것을 증명하고 싶었던 것이었다.

“처음 하는 직장 생활이 쉽지만은 않았죠. 
어렵고 힘든 선후배 관계 속에서, ‘선배들은 내가 해보지 않았던 것을 이미 해본 사람들이다’라는 존중의 마음을 가지려고 노력했어요. 
그리고 제 자신이 아직 불완전한 상태라는 것을 인정하면서 실수를 줄이고, 부족한 부분을 채우자는 목표를 세우고 사회생활을 시작했어요.”

그렇게 그녀는 자신을 증명하는 시간으로 3년 정도 투자해야겠다고 생각하며 첫 직장에서 인정받는다면 어느 직장에서든 인정받을 수 있는 사람이 될 것이라 믿었다. 
그렇기에 그 당시 그녀에게 얼마나 중요한 일을 맡는지, 얼마나 많은 일을 맡는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문화예술 분야에서 일하고 싶다면 사회에서 일어나는 일을 남의 일이 아닌 우리의 일이라고 생각해야 해요. 
사회가 어떻게 변하는지 항상 지켜보면서, 기회가 되는대로 공연도 많이 보면 좋고요. 
비싼 공연을 보는 것도 좋지만 작고 볼품없어 보이는 곳에서도 많은 활동들이 이루어지고 있어요. 
문화예술과 관련된 여러 가지 경험을 해보는 게 제일 중요한 거죠.”

문화예술 분야라고 해서 문화예술 관련 전공자들만이 일하는 것은 아니며, 다양한 분야의 전공자들이 모여 하는 일은 행정 일에 가깝다.
그녀는 문화적으로 어떻게 접근하며 행정 일을 할 것인지를 고민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문화예술 분야의 ‘마당발’이 되고 싶어요

“인맥을 쌓고, 경험을 많이 쌓아서 문화예술 분야의 ‘마당발’이 되고 싶어요. 
언제든지 믿고 일을 맡길 수 있는, 가장 먼저 생각나는 사람. 
런 존재가 되고 싶어요.”

소현씨는 끊임없이 새로운 것들이 만들어가는 문화예술 분야가 매력적이라고 했다. 
변화하는 세상의 흐름에 맞추어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만들어가는 이 일은 그녀에게 있어 계속해서 무언가를 공부하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야 하는 즐거운 일이다.

대안이 답이 되는 순간 그건 더 이상 대안이 아닌 거예요

“대안학교를 졸업했기 때문에 직면하게 되는 시선들이 있어요. 
우리는 뭔가 사회와 타협하지 않고 살아갈 거라고 생각해요. 
그런 친구들도 분명 있기는 해요. 
굉장히 용기 있는 친구들이죠. 
저는 그 정도의 자신감은 없었지만요.” 
소현씨는 대안이 답이 되는 순간 그것은 더 이상 대안이 아니라고 말한다. 
대안학교를 통해 자신을 사랑하고 자신의 선택에 책임지는 법을 배웠고,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 어느 정도 타협을 하는 법도 배웠다는 그녀는 대안학교를 졸업했다고 해서 대안적인 삶을 산
다고 생각하지는 말아주기를 당부했다.

“‘만약 일반학교를 갔다면 그 나름대로 즐겁게 살아가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을 할 때가 있어요. 
어디에 있든지 간에 각자 역할과 위치에서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고, 행복할 수 있다면 저는 괜찮다고 생각하거든요. 
‘내가 지금 여기서 인생을 허비하고 있어’라는 생각이 들면 내가 즐겁게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세요. 
대안이라는 건 내 방식대로 만들어가는 거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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