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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없다면 내가 만들자

JD 사운드 대표 - 김희찬



국제 발명전시회와 세계 각국 디자인협회의 각종 상 수상, 세계적인 음향기기 전문기업 몬스터그룹과 제휴하여 전세계 배급계약 체결, 세계적으로 유명한 투자그룹에서 투자 결정, 세계최초 독립형 모바일 디제이 컨트롤러 제작, 세상에 없던 휴대용 DJ 기기 제작, 2015년 매출 200억원 기대!

대기업의 이야기가 아니다. 
이 화려한 문구들은 중소기업 JD 사운드가 최근 몇 년 사이에 이뤄낸 성과다. 
창업한 지 이제 3년, 화제의 기업인 JD 사운드 대표 김희찬 씨를 만나 창업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핑계거리를 찾지 말고 대안을 찾아야

“어느 날 갑자기 ‘내가 이 일을 40년 동안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가 살아온 27,8년 중 4년 동안 토목공학을 공부했다고 해서 앞으로 40년을 그 분야에 얽매여 일해야 할까 싶었죠.”

대학 졸업을 앞두고 김희찬 대표는 진로에 대해 고민했다. 
그는 사실 의대에 가려던 꿈이 좌절되어 성적에 맞춰 전공학과를 선택했던 것이었기 때문에 전공과 상관없는 다른 일을 해도 괜찮겠다고 생각했다. 
리고 교환학생으로 일본에 유학을 갔던 시간은 그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다. 
아직 시스템이 갖춰지지 않아 ‘교환학생’이란 말조차 생소하던 2001년, 그는 한국 사람이 거의 없는 동네에서 일본인들과 어울려 살면서 많은 자극을 받았다고 한다. 
그는 그동안 알지 못했던 일본의 다양한 생활상을 접하며 선입견을 버릴 수 있었고, 일본이 정말 가까운 나라라는 사실을 절감하면서 유학시절을 재미있게 보냈다. 
대학을 졸업한 뒤 그가 일본 종합상사에 입사해 사회생활을 시작한 것도 그 기억 때문이었다.

‘토목공학’을 전공한 공학도라면 절대 가지 않을 길을 선택한 그의 사회생활은 그리 녹록치 않았다. 
학생 때는 상상도 못했던 상황들을 겪으며 화장실 변기를 잡고 울어 본 적도 있다고 했다. 
친구들은 전공을 버리면 늪 바닥에서 시작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며 그에게 걱정의 말을 쏟아냈다. 
그는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주먹을 불끈 쥐며 마음을 다잡았다.

“군대에 갔다 온 사람이라면 다 알 거예요. 
군대에서는 무조건 주어진 환경에 적응해야 해요. 
도망갈 구멍이 없거든요. 
도망갈 핑계 거리를 찾지 말고 주어진 환경에서 대안을 찾는 게 최선이죠. 
사회생활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했어요.”

일본 종합상사에서 오디오 분야를 담당했던 그는 자신이 맡은 분야와 관련된 기술을 익히고자 공부를 해나갔다. 
열정이 있었기에 그는 누구보다 빠르게 전문 지식을 익힐 수 있었다. 
그렇게 3, 4년이 흐르자 그는 어느덧 일에도 익숙해지고 재미를 느끼기 시작했다.

“직장생활 4~5년차가 되니 제 나름대로의 프로젝트를 만들어 진행해보고 싶더라고요. 
물론 회사의 이익을 위해서였죠. 
다양한 프로젝트를 구상해서 기안도 올려 보고 시도도 해보았지만, 회사에서 받아주지를 않았어요. 
구조적인 한계가 있었던 것 같아요.”

음악을 통해 사람들에게 행복을 느끼게 하고 싶다는 꿈

김희찬 대표가 다니던 종합상사를 그만두고 창업을 생각하고 있을 즈음, 다른 일본회사에서 한국 지사를 맡아달라는 제안이 들어왔다. 
론 이번에도 오디오와 관련된 일이었다. 
한국 지사장으로 일하면서 그는 이전 직장에서와는 다르게 회사 운영에 관한 전반적인 일들을 경험할 수 있었다. 
그러한 경험은 그가 창업의 기반을 닦는 기회가 되었다.

“오디오(음향) 분야에서 일하다 보니 음악을 쉽게 편곡하고 작사, 작곡할 수 있는 플랫폼에 관심이 생겼어요. 
음악을 통해 사람들에게 행복을 느끼게 하고 싶다는 꿈도 있었고, 오디오 분야만큼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는 자신감도 있었죠.”

그러나 그가 일하던 회사는 반도체 회사라서 같은 ‘오디오 분야’라고는 해도 기계에 대한 면만 다룰 뿐 음악의 문화적인 측면까지 고려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그는 기획안을 들고 다른 회사에 찾아가 제안했다.
하지만 그가 생각하는 새로운 시장의 가능성을 이해하는 회사는 없었다. 
그가 혼자서 할 수밖에 없겠다고 결심한 순간이었다.

“클럽에 가보면 지금도 굉장히 큰 DJ 기기를 써요. 
20~30년 전에 나온 것들이죠. 
홈 오디오도 MP3로 사용하는데 DJ들은 아직도 CD를 들고 다녀요. 
DJ 기기를 만드는 회사를 찾아가서 기술진과 이야기해 보니 안 만드는 게 아니라 못 만드는 거더라고요. 
당시 일본오디오 반도체 회사 한국 지사를 다니고 있었는데 정부에서 창업지원금 1억을 주고 창업을 지원해 준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내가 직접 해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죠. 
그게 제일 빠르잖아요. 
그렇게 창업을 결심했어요.”

그는 남들이 안 하거나 못하는 일을 자신이 먼저 시작한다면 분명 남들보다 앞서 갈 수 있으며, 기회는 아무 때나 찾아오는 게 아니기에 기회가 왔을 때 어영부영하다가 놓치지 말고 얼른 잡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가 계획하던 비즈니스가 창업사관학교를 만나면서 필요자금과 사무공간을 지원 받게 되면서 더욱 자신감도 생겼다. 
나라의 지원을 받아 창업할 수 있는 제도가 있다는 것에 놀랐고 감사했다. 
사회의 도움으로 창업을 할 수 있게 되었으니 사회적 책임감을 가지고 사회에 기여 해야겠다는 사명감도 커졌다.

힘들었지만 재미있었던 창업 초기

2011년 김희찬 대표는 JD 사운드를 설립했다. 
JD 사운드의 JD는 DJ의 단순히 알파벳 순서를 바꾸어 놓은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김희찬 대표가 가장 존경하는 두 기업인의 영문 이니셜이다. 
J는 H그룹의 회장 이름에서, D는 자신의 할아버지에게서 빌려왔다. 
그들처럼 무일푼에서 시작했지만 회사를 크게 성장시키고 사회에서 존경 받는 기업인이 되고 싶다는 염원에서 그가 지은 이름이었다.

“창업 후 1년 동안은 제품 개발에만 몰두했어요. 
한 가지 문제를 해결하면 또 다른 문제가 생기고, 그 문제를 해결하면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문제가 생겼죠. 
끝이 날 것 같지 않던 제품 개발의 시간이었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면 창업 초기인 그때가 가장 재미있었어요.”

그는 청년창업사관학교 졸업을 앞두고 시제품을 만들어 무작정 CES(국제전자제품박람회)를 찾아갔다. 
기대보다 더 반응이 좋았다. 
는 한껏 기대에 부풀어 정부기관, 대기업, 벤처 투자 회사를 찾아다녔지만 ‘이런 걸 누가 사겠느냐’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때 그는 중소기업진흥공단에서 성장공유형 자금 5억 원을 투자 받게 되면서 드디어 제품 생산을 할 수 있었다. 
그렇게 만든 제품을 들고 그는 세계 곳곳에서 열리는 전시회를 찾아다녔다. 
본격적인 마케팅을 하지 않았는데도 전시회에서 만난 판매상들이 관심을 보였다. 
파티 문화를 즐기는 미국은 물론 폐쇄적인 중동 역시 집 안에서 하는 파티가 발달해 있어서 시장이 폭넓었다.

누구나…… 즐기는 음악, 만드는 음악

김희찬 대표는 2012년 3월 미국 텍사스 오스틴에서 열린 사우스바이사우스웨스트라는 전시회에서 몬스터그룹 사장이 지나가는 걸 보고 무작정 달려가서 20초만 시간을 내달라고 부탁했다. 
몬스터그룹은 세계적인 음향기기 전문회사로, 우리나라에는 박태환 헤드폰으로 잘 알려진 회사다.

그 짧은 순간의 용기가 엄청난 결과를 가져왔다. 
20초가 30분, 1시간, 4시간의 미팅으로 이어지면서 몬스터그룹과 세계 배급 계약을 체결하게 된 것이다. 
그 계약으로 JD 사운드의 휴대형 DJ 장치인 ‘PDJ(Portable Disk Jackey)-Monster’는 몬스터그룹의 배급라인을 통해 미국과 유럽, 캐나다 등 전 세계 20여 개국 소비시장으로 공급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PDJ는 실리콘밸리 피칭대회에서 25개 기업과 경쟁하여 1등을 차지했고, 그 결과 페이팔(인터넷 결제 서비스 회사) 투자로 유명한 벤처그룹의 투자를 이끌어내기도 했다.

물론 그가 처음부터 탄탄대로를 달린 건 아니었다. 
PDJ는 기존에는 없던 낯선 제품이었고 고가인 데다가 브랜드도 알려지지 않아 판매 루트를 열기가 쉽지 않았다. 
하지만 그에게는 어려움을 이겨내게 만드는 확실한 목표가 있었다.

“누구나 쉽게 음악을 만들 수 있는 플랫폼과 그런 기술을 개발하는 것이 우리 회사의 목표입니다. 
음악은 아무나 만들 수 없다는 게 일반적인 생각이지만, 저는 누구나 음악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음악에는 모차르트, 베토벤 같은 사람들이 하는 영역이 있고, 현대 음악처럼 모방을 통해서 자기들이 서로 즐길 수 있는 음악을 만드는 영역이 있죠.
지금 유명한 작곡가 중에 음악 공부를 전혀 해보지 않은 사람도 있어요.
제대로 된 이론을 몰라도 좋은 곡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관련 기기나 프로그램을 만지다 보니 음악까지 만질 수 있게 된 거죠. 
작곡도 편곡도 정말 쉽게 할 수 있는, 음악을 잘 모르는 사람도 음악을 마음껏 즐길 수 있는 그런 기술을 개발하고 싶어요.”

자신이 할 수 있는 범위, 책임질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조금씩

“창업은 정글에서 싸우는 생존 게임이에요. 
철저하게 준비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죠. 
어설프게 시작했다가 상처를 입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나와 똑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전 세계에 100명쯤 있을 거라는 생각을 가져야 해요. 
그중에 누가 더 빨리, 제대로 해내느냐의 싸움이죠. 
경쟁이 치열하다 보니 주변 사람이나 믿었던 친구에게 아이디어만 뺏기고 좌절하는 경우도 있어요. 
능력 있는 젊은 친구들이 그런 저런 일을 겪으며 다시는 사업을 안 하겠다고 나가떨어지면 사회적으로 큰 손실이죠. 
도전하지 않고 다들 대기업에 취업하려고만 할까 봐 걱정입니다. 
충분히 경험하고 공부한 뒤에 자신이 할 수 있는 범위, 책임질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조심스럽게 시작해 보면 좋겠어요. 
매출 몇 백만 원에 순수익 5만 원, 10만 원 정도, 용돈을 버는 성과만으로도 큰 성공으로 인정받는 수준의 일을 시작해 보는 게 바람직하다고 생각해요.”

김희찬 대표는 창업을 하고 사업의 규모가 커지기 시작하면, 뒤를 돌아볼 수 없는 시점이 온다고 했다. 
사업 초기에는 1억 원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되었지만, 사업이 잘 진행되고 있는 지금은 10억의 빚이 있고 그 두 배가 넘는 투자를 하고 있다. 
사업의 규모가 커졌기 때문에 투자한 만큼의 성과를 이뤄내지 못할 때 타격 역시 더 큰 것인데, 그렇다고 사업 규모를 줄일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는 앞만 보고 걸어가야 하는 이런 상황에서 어려움이 닥쳤을 때, 모든 걸 걸고 그 고비를 뛰어넘거나 잘못 되었을 때 책임을 질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만약 학생들이 책임질 수 없는 수준의 무모한 도전을 한다면 잘못된 길로 들어설 가능성이 높다며 걱정했다.

그는 초등학교 졸업 교지에 희망직업을 ‘선생님’이라고 썼다. 
중고등학생 때는 운동이 너무 좋아서 스포츠의학 분야를 공부하려고 했다.
월드컵 시즌에는 국가대표팀 주치의가 되고 싶기도 했다. 
그는 비록 자기가 가장 하고 싶은 일이 아니었더라도, 지금 할 수 있는 일 속에서 그에 못지않은 보람을 찾을 수 있으며, 그것은 자신이 하기 나름이라고 말했다.

“현실과 동떨어져서는 안 돼요. 
상황과 처지에 맞게, 의지를 가지고 열심히 노력해야죠. 
그럴 때 기회가 찾아오는 거예요. 
현실을 불평하고 남 탓만 하고 있으면 변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어요. 
자기가 놓인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것을 찾아야 합니다. 
그러다 보면 좀 더 재미있고 보람 있는 삶을 살 수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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