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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짝 노점으로 반짝반짝 빛나다

웃어밥 대표 - 최성호



이대역 3번 출구 앞에서 반짝 노점으로 창업을 시작한 최성호 씨는 이화여대 학생들의 든든한 아침을 책임지는 ‘웃어밥’의 대표다. 
‘웃어밥’은 혈기 왕성한 청년 셋이서 역 앞에 작은 테이블 하나 놓고 1,000원짜리 주먹밥을 파는 사업이다. 
가장 쉽게 만들 수 있는 밥, 말 그대로 주먹만 한 밥을 만들어 파는데 뭐 그리 대단한 노하우나 경험이 필요하겠냐고 말할지 모른다. 
하지만 ‘웃어밥’이 탄생하기까지, 주먹밥 하나로 이대 앞에 이어 명동에 매장을 갖게 되기까지의 그가 겪은 과정은 그리 만만한 과정이 아니었다.

상상과는 딴판이었던 현실

최성호 대표는 세계인의 손에 맥도널드 햄버거와 스타벅스 커피 대신, 떡볶이와 식혜를 들게 하고 싶다는 꿈을 가지고 있다. 
이런 포부를 밝히면서도 자신은 무척 평범한 사람이라고 말한다. 
원주에서 17년 동안 레스토랑을 경영하시던 아버지 밑에서 자란 그는 자연스럽게 음식사업에 관심을 갖게 되었지만, 그는 고등학교에 다닐 때까지 장사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부모님의 이혼으로 청소년 시절 방황도 했으나 무사히 신문방송학과에 입학할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옷에 대한 관심 때문이었다.

“한 달 아르바이트 해서 80만 원을 벌면 그걸 가지고 청담동 돌체앤가바나에 가서 청바지 하나 사고 내려왔죠.”

여성잡지는 많아도 남성잡지는 귀하던 시절에 ‘지큐’라는 남성잡지를 만나던 날, 그는 진로를 결정했다. 
잡지기자가 되면 패션에 관련된 일을 맘껏 할 수 있겠구나 싶었다. 
하지만 신문방송학과에 입학해서 한 학기 수업을 듣는 동안 회의가 생겼다. 
넉넉지 못한 형편에 수업료도 부담스러운데 졸업 후 잡지기자가 된다는 보장도 없는데다가, 알고 보니 기자가 받는 보수 또한 턱없이 적었다. 
학교를 다니는 게 괜한 시간 낭비, 돈 낭비가 아닌가 싶었다. 
그가 학교를 그만둔다고 하자 부모님은 반대를 하셨고, 답답한 심정으로 고민하고 있을 때 머리에 퍼뜩 드는 생각이 있었다. 
‘그 일을 하고 있는 사람에게 직접 물어봐라!’

마침 보도사진연구회라는 동아리 선배 중 ‘지큐’ 잡지의 픽처 에디터인 분이 있었다. 
그는 전화를 걸어 당장 약속을 잡았다. 
하지만 현실 속 그림은 그의 상상과는 딴판이었다. 
서울에서 만난 선배는 그가 꿈에 그리던 잡지기자와 너무나 다른 삶을 살고 있었다.

비싸고 화려한 게 무조건 좋은 스물네 살 청년의 창업

“저는 적극적인 성격이 아니에요. 
오히려 소극적인 편이죠. 
그만큼 간절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 같아요. 
제 자신이 사업가 기질이 있다거나 특별히 창의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냥 술 마시는 거 좋아하는 평범한 대학생이었죠.”

제대를 하고 돌아와 보니 도무지 복학할 형편이 아니었다. 
휴게소에서 우동을 팔며 어렵게 돈을 벌어 오신 어머니가 친척의 권유로 모아놓은 돈을 투자했다가 탕진한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그는 차라리 잘 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는 이번 기회에 자신이 좋아하는 옷, 입고 싶은 옷을 팔아야겠다고 결심했다. 
지방도시보다는 서울이 낫겠다 싶어 상경한 그는 자신이 좋아하는 브랜드숍이 모여 있는 거리로 매일같이 출근했다.
그러다가 그는 강남 신세계백화점 남성복 매장으로 무작정 들어가, ‘여기 있는 브랜드, 제가 다 압니다’ 하고 큰소리치며 일하고 싶다고 조른 덕에 판매원으로 입사를 할 수 있었다.

“좋아하는 일을 하니까 피곤하지가 않더라고요. 
지금까지는 ‘아르바이트는 곧 돈, 생활비’였는데 좋아하는 일을 하니까 ‘일이 곧 돈’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어요. 
그때 느꼈죠. 좋아하는 일을 하면 성공까지는 몰라도 피곤하지는 않겠구나 하고요.”

그는 누가 시키지도 않았건만 인터넷 카페를 만들어 신상품을 소개하고 이벤트도 하며 신나게 일했다. 
그러는 1년 동안 단골손님도 꽤 생겼다. 
그렇게 붙은 자신감으로 그는 24세 때 첫 사업에 도전했다. 
그 당시 하루에도 수백 번씩 ‘디젤매니아’라는 패션커뮤니티에서 새로운 정보를 확인하던 그는 모임 회원들과 정보를 공유하면서 사업 아이디어를 생각해냈다. 
중국에서 제조한 명품 이미테이션을 수입하여 모임 회원들에게 파는 사업이었다.

패션에 관해서라면 누구보다 자신이 있었고 첫 달 순수익이 200만원을 넘었을 땐 성공의 길로 들어선 것만 같았다.
하지만 첫 번째 사업은 두 달 만에 망하고 말았다. 
일명 짝퉁시장에 대한 단속으로 관세법이 바뀌었고, 그가 수입한 상품은 하나도 남김없이 다 압류되고 말았다. 
를 믿었던 고객들로부터의 원성을 감당하기 어려웠던 24세 청년은 마음고생으로 원형탈모까지 생겼다. 
결국 부모님의 도움으로 해결했지만 마음을 다잡을 수 없었던 그는 명동 거리를 마냥 돌아다녔다.

500원짜리 호떡이 준 깨달음

“스물네 살 최성호한테는 이상한 생각이 있었어요. 
비싼 게 무조건 좋은 거다.
겉으로 좋아 보이고 화려한 것이 좋은 거다. 
최고의 음식은 제일 비싼 음식, 최고의 가방은 제일 비싼 가방…….”

명동 거리를 하염없이 걷던 그의 눈길을 붙잡은 것은 호떡집 앞에 길게 늘어선 사람들이었다. 
추운 날씨에 500원짜리 호떡 하나 먹겠다고 10분, 20분씩 줄서서 기다리는 사람들. 더 이해가 안 가는 것은 그렇게 떨다가 겨우 자기 차례가 되어 호떡을 받으면서 짜증을 내기는커녕 고맙다고, 잘 먹겠다고 웃으면서 500원을 내는 것이었다. 
그 순간 그는 사람들은 자신이 내는 돈보다 가치가 더 큰 것을 받을 때 좋은 음식, 좋은 물건이라고 느낀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야 사업이 되겠구나 싶었다.
소비자는 자신이 내는 돈에 비해 상품의 가치가 떨어지면 손해를 본다 싶어 사지 않는다. 
낸 돈보다 손에 들어온 물건의 가치가 더 크다고 느낄 때 그 상품에 감동을 받는다. 
너무나 당연한 진실이지만 그에게는 충격적인 깨달음이었다.

잘하는지, 할 수 있는지, 그것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지

복학할 생각이 없었던 최성호 대표를 설득한 사람은 어버지였다. 
록금 도와주실 거면 그 돈을 미리 달라고, 포장마차를 해보겠다고 부탁하러 갔던 그에게 아버지는 ‘작은 일이라도 시작을 했으면 끝을 맺어야 한다.
중간에 포기하는 사람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셨다.
아버지 말씀대로 학교로 돌아온 그는 장학금을 받으면서 수업을 들으면서도 단지 장학금을 받기 위해 하는 공부만으로는 남는 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학교의 학점이 인생을 책임져 줄 것 같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경험이 될 만한 활동을 열심히 찾았다. 
대외활동은 물론, kpc라는 생산성 본부가 주관하는 대학생 마케팅 스쿨에도 참여하고 경영학 수업도 들었다.

“마지막 수업에 팀별 경쟁 프레젠테이션 시간이 있었는데, ‘본죽’에서 주최하는 공모전 주제를 가지고 프레젠테이션 준비를 하기로 했어요.
교수님과 친구들에게 피드백도 받을 수 있으니 그걸 다듬어 공모전에 낼 계산이었죠. 
그리고 계산대로 저는 공모전에서 대상을 받았고, 그해 수능 시즌에 맞춰 ‘불낙죽’이란 제품으로도 출시되어 20억 이상의 매출을 올렸어요.”

그는 잘 한다고 인정을 받으니 자신감이 생기고 여러 분야에 도전해보고 싶어졌다. 
자신이 과연 무엇을 잘하고 좋아하는지, 어떤 직업을 가져야 할지 그는 공모전을 통해 고민해 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2010년, 다양한 분야의 공모전 10개에 도전하기로 결심한 순간이었다. 
그는 그해 6개의 공모전에 도전하여 3개의 공모전에서 수상을 했다.

“공모전을 준비하는 동안 그 분야에 대해서 반 전문가가 되죠. 
분야와 회사, 그걸 사는 소비자를 알아야 하니까 공부를 많이 해요. 
직접 마트에 가보고, 매장에서 일하시는 아주머니와 이야기도 해보고, 슈퍼바이저를 만나서 질문도 하고……. 
창업을 하는 경우에도 이런 식의 준비가 필요한 것 같아요. 
내가 잘하는지, 할 수 있는지, 그것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지에 대한 검증이죠.”

그의 첫 번째 아이템은 부동산이었다. 
‘행복덕방’이라는 이름을 내걸고 친구와 후배를 설득해 창업 팀을 꾸렸다. 
매일 만나 회의를 하고 애플리케이션을 만들고 서비스를 확정하고 그러던 중 이미 서울에서는 ‘부동산 114’나 ‘스피드 부동산’ 같은 큰 회사들이 부동산 시장을 선점하고 있으며 그들과 경쟁해 봤자 승산이 없다는 판단을 하게 되었다. 
렇게 그는 씁쓸히 창업 계획을 접었다.

“저에게는 음식점 하시는 아버지 말고 아버지 한 분이 더 계신데 sbs러시아 특파원을 하셨죠. 
아버지께 ‘정말 창업이 맞는지, 차라리 취업하는 게 낫지 않은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했더니 ‘내가 인생에서 후회하는 게 하나 있다’고 하시는 거예요.”

이야기인즉슨 러시아에 있을 때 비행기 운전면허를 딸 기회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때는 거기서 평생 살 사람처럼 나중으로 미루었는데, 
한국으로 돌아오고 보니 그 기회가 영영 안 돌아오더라는 것이었다.

“그때가 너무너무 아쉽고 후회된다. 
무엇이든 네가 하고 싶은 게 있다면 의심하지 말고 일단 해보고, 그런 다음 그 결과를 받아들이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친구를 설득했어요. 
당장 하기 어려운 일 말고 우리 스스로 천 원이라도 벌 수 있는 일을 해보자고요. 
친구들은 외식업은 누구든 언제든지 할 수 있다면서 반대했어요. 
창업은 혁신적인 것을 해야 되는 것 아니냐면서요. 
그래서 저는 수상 경험을 이야기하며 일단 저를 믿어 달라며 설득했고, 설득을 거듭한 끝에 서울행 열차에 몸을 실었죠.”

반짝노점, 웃어밥 이야기의 시작

아는 선배에게 빌린 돈 500만 원, 그것이 낯선 서울로 상경한 세 젊은이의 전 재산이었다. 
아현 제2개발지역에서 보증금 500만 원에 월세 40만 원짜리 방을 얻은 뒤 본격적으로 계획을 세웠다. 
‘경험을 쌓기 위해 여러 군데에서 아르바이트를 해보자. 그리고 돌아와서 매일 회의를 하자.’ 
이것이 최성호 대표와 친구들의 첫 번째 계획이었다.

“각자 아르바이트를 하는 6개월 동안 매일매일 회의를 했어요. 
그날 그날 직원이나 사장님에게서 느꼈던 점, 아이템에 관한 아이디어, 사장 입장에서 생각한 합리적인 경영 원칙 등 크고 작은 부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죠. 
그러면서 빼놓지 않은 일이 있었어요. 
각 분야에서 성공한 사람들에게 손편지를 쓰는 일이었죠. 
국대떡볶이 김상연 대표님을 시작으로 방랑식객 김지호 씨, smcnc의 송경희 대표님, 네네치킨 현철호 회장님, 놀부보쌈을 만들고 ‘이야기가 있는 외식공간’이라는 사업을 하시는 고진곤 대표님, 메가엠베스트 대표이신 김상호 멘토님 등께 손편지로 인사를 드렸어요. 
그분들과 2, 3개월씩 만나면서 귀한 조언을 듣고 언젠가는 창업을 하기 위해 지금은 준비하고 있다고, 우리 같은 사람들이 있음을 알렸던 것이죠.“

그는 아르바이트만 하면서 시간을 보내는 게 안타까워서 이대 앞에서 떡볶이 ‘포장마차라도’ 해볼까 싶었지만, 막상 시작하려니 만만히 볼 일이 아니었다. 
구청의 허가는 물론이요 정해진 개폐점 시간을 지켜야하고 자격증도 필요했다. 
산 너머 산이었다. 
암암리에 거래되는 자격증을 사는 방법도 있었지만 값이 2천만 원이 넘는데다가 떳떳하지 못한 일이라는 생각에 그만두기로 했다.

“무엇이든 시작하고 싶었어요. 
친구들과 상의 끝에 이른 아침에 잠깐 여는 ‘반짝노점’을 하기로 결정했죠. 
부지런해서가 아니라 단속 공무원이 무서워서 공무원 출근시간 전에 하자는 의견에 모두 찬성했던 거예요. 
그렇게 ‘웃어밥’이 시작되었죠.”

주먹밥에 담긴 파이팅!

대망의 첫날, 천 원짜리 주먹밥 68개 판매, 매상 68,000원. 저조한 실적이었다.
매상을 올리기 위해 해적 깃발을 만들자는 둥, 이대생들이 보고 웃을 수 있는 좋은 글귀를 쓰자는 둥 최성호 대표는 친구들과 머리를 맞대고 아이디어 회의를 하다가 머리에 떠오르는 글귀가 있었다.

‘고객에게 다가가기 위해서는 질문 하나만 생각하면 된다. 
어떻게 하면 이 사람을, 이 고객을 도와줄 수 있을까?’

어떻게 고객들, 이대생들을 도와줄 수 있을까? 
돈이 없으니 주먹밥을 공짜로 주거나 물을 덤으로 줄 수도 없고, 아이돌처럼 키 크고 잘 생기지도 못했으니 고객들의 안구를 정화시켜 줄 수도 없는 일.
고민을 하던 그는 아침 등굣길 이대생들의 얼굴을 떠올렸다. 
지치고 피곤한 얼굴, 이어폰을 낀 채 전단지 아주머니를 잽싸게 피해 다니는 어둡고 삭막한 아침 분위기.

“아, 아침에 뭔가 파이팅할 수 있는 기운을 불어넣어 줘야겠다. 
활기차게 인사를 해야겠다.”

돈 안들이고 바로 시작할 수 있는 인사! 웃으면서 인사하는 일도 처음에는 어색했지만 반복하다 보니 몸에 근육이 생기듯 요령이 생겼다.

“좋은 아침! 파이팅하세요! 시험 잘 보세요!”

점점 멘트도 늘고 재미있는 퀴즈도 내면서 활기찬 인사를 나눈 지 두 달, 68개였던 판매량이 300개로 늘었다. 
판매량이 늘어서 좋기는 했지만 그는 정말 궁금했다. 
활기차게 인사를 해서 좋아하는 건지, 자리가 좋아서인지, 주먹밥이 맛있어서인지, 그 진실을 알고 싶었다. 
그는 당장 행동으로 옮겨 설문지 300장을 만들어 돌렸다. 
주먹밥을 하나씩 주겠다는 조건으로 인터넷에서 피드백을 받았는데, 놀라운 것은 ‘주먹밥 맛도 맛이지만, 인사를 하면서 활기차게 파이팅을 외쳐 줘서 고맙다’라는 피드백이 제일 많았다.
그 당시 감동을 받았던 설문지는 스캔해서 보관중이라고 한다.

쓸 사람에게 물어봐라

최성호 대표는 어느 건축가의 다큐멘터리 독립영화를 보고 깨달은 이야기를 해주었다. 
기적의 도서관 시리즈와 노무현 전 대통령 사저를 설계했고 좀 유별난 사람으로 알려져 있는 건축가 ‘정기용’ 선생님의 일대기를 담은 영화였다.

“전남 무주군 무주면 시골에서 군수가 면사무소를 짓겠다고 해 공무원들이 머리 맞대고 회의를 했어요. 
그동안 정기용 선생님은 무주군 마을사람들을 만나서 어떤 면사무소가 생겼으면 좋겠냐고 일일이 물어봤다고 해요. 
10명 중 9명은 ‘어차피 너희 맘대로 지을 거면서 왜 물어보냐’고 박대를 했는데, 할머니 한 분이 마을에 목욕탕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하시더랍니다.
그 마을에는 대중목욕탕이 없어서 일 년에 두 번 봉고차를 빌려 대전으로 목욕하러 가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죠. 
그래서 무주면사무소 1층에 대중목욕탕이 들어섰다는 일화에요. 
그 영화에서 제가 깨달은 것은 ‘쓸 사람에게 물어봐라’였어요.”

그는 앞으로도 새로운 메뉴를 개발하고 변화를 줄 때마다 ‘쓸 사람’에게 물어보는 자세로, ‘웃어밥’ 미국 1호점이 생기는 그날까지 열심히 노력할 것이라고 했다.

죽기 전에 꼭 해보고 싶은 것을 목표 삼아

최성호 대표는 서울시 청년창업 1000 프로젝트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하면서 8평짜리 매장을 오픈하게 되었다. 
하지만 여유 자금이 없어 전기 배선부터 수도관, 미장일을 직접 해야 했다. 
일주일이면 끝날 공사가 두 달 반이나 걸렸지만, 직접 해보았기에 더 애착이 가고 더 잘 알게 되었다. 
그는 그런 시간을 거치는 동안 더욱 구체적인 계획과 준비가 가능했다.

역 앞에 서서 반짝노점으로 팔던 주먹밥. 이제는 배달에, 단체 주문도 늘어 명동 2호점까지 오픈하게 되었으니 성공한 거 아니냐는 질문에, 그는 ‘아직 성공이라기보다 도전을 계속하고 있는 중’이라고 대답했다.

"창업의 목적, 자신이 이루고 싶은 꿈의 목표가 돈이 아니었으면 좋겠어요. 
돈은 변수에 많이 좌우돼요. 
잠재적 경쟁자, 개인적인 사건, 사회적인 이슈 등 여러 가지 이유 때문에 열심히 노력해도 돈을 못 벌 수 있거든요. 
노력과 결과가 비례하지 않을 때도 있죠. 
그래서 그것에 목적을 두면 보상받지 못했을 때 그것에 얽매이고 좌절하게 돼요. 
자기가 죽기 전에 꼭 해보고 싶은 것을 목적으로 삼았으면 좋겠어요. 
그러면 중간에 시련이 있어도, 포기만 하지 않으면 해낼 수 있거든요. 
마지막으로, 작은 일이 모여야 큰 일을 이룬다는 말씀을 꼭 드리고 싶어요. 
스티븐잡스나 김범수 대표님도 처음부터 아이폰 만들고 카카오톡 만든 거 아니거든요. 
그렇게 되기까지 많은 과정이 있었죠. 단번에 되는 일은 없어요.
되고 싶은 것이 있다면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일을 행동으로 옮기세요.
지루하고 힘들겠지만 꾸준히, 작은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게 최고의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서로 힘이 되는 사람과 함께 일하는 것도 중요해요.
앞으로 가면 갈수록 혼자 할 수 일은 적어지거든요.”

‘웃어밥’이 만드는 것은 음식만이 아니라 ‘시스템’이라고 말하는 최성호 대표는 미국 1호점을 위해 도전을 계속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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